언제나 내 사랑 안에 머물러라 (요한15,9)
예수의 소화 수녀회
창설 및 영성조 비오 몬시뇰은 1936년 4월 1일 광주시 광산구 본량면 북산리 369에서 아버지 조규표, 어머니 김영례의 6남 5녀 중 5째로 태어났다.
1962년 광주가톨릭 신학대학 제1기로 입학하여 신학을 공부하고
1969년 12월 16일 사제 서품을 받았다.
본당 사제로서는
1973년 나주 본당 주임을 시작으로
1976년 계림동 본당
1981년 진도 본당
1988년 순천 저전동 본당
1992년 화순 본당
1993년 봉선동 본당에서 봉사하며
2006년 풍암동 본당 주임을 마지막으로 본당 사목 일선에서 은퇴한다.
조 비오 몬시뇰은 오직 주님의 사도로서 주님의 말씀을 전하는데 충실해야 한다는 열렬한 사명감에 불탔다.
1980년 5·18 민주화운동에 참여하였는데 당시에는 소위 온건·수습파로서 시민군에게 “광주 시민의 더 큰 희생을 막기 위해서는 무기를 내려놓아야 한다”며 무릎 꿇고 호소하였으며, 1980년 5월 26일에는 오전 9시 광주를 무력진압하려는 계엄군을 막기 위해 죽을 각오를 하고 맨손으로 소위 '죽음의 행진'에 나섰다. 이후 구속 기소되어 4개월간 옥고를 치렀다.
1981년부터 사회복지법인 소화자매원 이사, 대표이사, 1994년~1996년까지 초대 5.18 기념재단 이사장, 2000~2002년까지 학교법인 조선대학교 관선 이사장을 각각 지냈으며, 5·18 진상규명을 위해 활동했다. 또한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계엄군의 헬기 사격을 증언하여 오랫동안 고초를 겪었다.
1999년 1월 18일 김준호 레오 형제와 예수의소화수녀회를 공동 창립하였고.
2008년 1월 16일 교황 베네딕토 16세로부터 몬시뇰 칭호를 받았다.
2006년 사목 일선에서 은퇴한 후 예수의소화수녀회의 지도신부로서 매일 미사와 소화공동체에서 일어나는 모든 성사를 담당하며, 영적으로나 물질적으로 수녀회의 기초를 놓았다.
또한, 사회복지법인 소화자매원의 대표이사로서 소화공동체 안팎으로 일어나는 모든 크고 작은 일들에 혼신을 다하며, 사랑의 아버지로 든든한 울타리가 되었다.
2016년 9월 21일에 향년 79세로 선종하여 전남 담양군 소재 천주교 묘지에 안장되었다.